학회지 인지과학 제1권 1호에 실린 초대회장 소홍렬 교수님의 "인지과학 창간사"입니다. 10 여년의 한국인지과학회의 역사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좋은 글인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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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간 사] - 소홍렬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인지과학은 마음의 과학이다. 심리학이 본래 마음의 과학으로 시작된 것이지만 인지과학은 마음의 인지적 기능에 집중하면서 전산학, 신경과학, 언어학 등 다른 영역들의 학문과 공동연구를 하는 새로운 종합과학이다.
지각하고, 기억하고, 계산하고, 추리하고, 이해하고, 판단하고, 문제를 풀고, 기술을 배우고, 일을 계획하는 것 등을 인지적 기능이라고 할 때 인지심리학만이 아니라 전산학에서의 인공지능 연구와 신경과학에서의 두뇌연구 그리고 언어학에서의 언어능력 연구의 놀랄만한 성과는 마음의 인지능력을 종합적으로 조명해 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종합과학으로서의 인지과학은 우선 가장 자연과학적이고 엄밀한 방법에 의존하는 과학의 분야들을 중심으로 하고 그러한 방법을 적용할 수 있는 인지현상을 제한하여 연구하고자 한다. 그러나 인지현상만 하더라도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제한될 수 없는 사회과학적 내지는 인문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되는 측면을 가지고 있으며, 더우기 일반적인 심리현상이라고 하면 인지현상 보다는 훨씬 다양하고 다원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인지과학은 자연과학적 엄밀성으로 시작하고자 하지만 사회학이나 인류학과 같은 사회과학과 교육학이나 철학같은 인문과학을 참여시키는 쪽으로 그 학문적 범위를 넓혀가지 않을 수 없다. 사회과학과 인문과학까지 포함하는 인지과학의 '과학'은 결국 '학문'이라는 뜻을 갖게 된다. 이것은 인지과학이 인지적 현상을 바탕으로 하여 심리현상 일반에 관한 이해를 추구하는 마음의 과학이 되고자 한다면 불가피한 전개 방향이다.
우리 인간의 마음은 각각 하나의 작은 우주와 같다. 우주 그 자체의 신비를 이해하는 것 만큼이나 소우주인 마음을 이해하는 일도 어렵다. 인류 역사에서의 온갖 신화들, 종교들, 예술들, 그리고 철학들은 각기 그 나름대로 큰 우주인 자연과 작은 우주인 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의 축적된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자연과 인간의 마음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현대과학은 연구의 대상영역을 제한하고 분화함으로써 과학적 발전을 촉진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인지과학은 이제 분화된 과학들을 다시 하나의 공동 관심사를 중심으로 결속시키는 학문이 되었으며, 인류의 전통문화를 이루는 철학, 예술, 종교, 신화에서까지 마음에 관한 자료를 구할 수 있는 폭 넓은 학문이 되었다. 우리의 마음이 그처럼 길고 넓은 세계라는 것을 말해 준다.
우리나라에서의 인지과학은 2년전 대우재단의 도움을 받아 인지과학 공동연구가 시작된데서 비롯되었다. 심리학, 전산학, 신경과학, 언어학, 사회학, 심리철학의 분야들이 참여한 학제적 연구였으므로 종합과학으로서의 인지과학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공동연구가 바탕이 되어 지난 해에는 한국인지과학회가 창립되었으며 이제는 이 학회지 「인지과학」을 창간하기에 이르렀다.
지금은 우리 인지과학에 참여하는 분야들도 인류학, 교육학,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으로 점차 확산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인지과학이 하나의 독립된 분야로 정착이 될 때까지는 아무도 이 종합과학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또한 인지과학을 전공하는 주인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종합과학으로서의 성격 때문에 인지과학은 주인보다 객들이 더 많이 모여들어야 하는 학문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학회지 「인지과학」은 각 분야에서의 연구결과 중 인지현상에 관한 공동의 관심사가 될 수 있는 것을 발표하여 검토하고 비교하며, 학제적 연구를 계획하고 추진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는 장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인지과학은 하나의 첨단과학이고 종합적 학문이며 우리 문화의 전통과 특수성이 그 내용으로 제시되면서도 보편적인 마음의 과학으로 발전될 수 있는 것이므로 많은 사람들이 적극 참여하여 지금 막 태어난 이 「인지과학」의 장을 함께 키워주었으면 한다.
이러한 탄생이 있기까지 여러 면으로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한다. |